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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파음파] 영화 <증발>을 통해 살펴 본 그들의 ‘증발’에 대하여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평화로웠을 2000년 4월 4일, 서울 망우1동 염광아파트 놀이터 부근에서 한 아이가 실종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20년이 넘도록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만 5세의 여자아이였던 준원이는 친구 승일이네 가족이 운영하던 중국집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선 뒤 지금까지 실종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다큐영화 증발&amp;amp;amp;nbsp;

 영화 ‘증발’은 2000년 4월 4일, 아동 최준원 실종 사건의 발생 이후 실종아동가족의 20년간 노력, 그리고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다큐멘터리입니다. 4년 넘게 이어진 촬영과 2년간의 편집기간을 거쳐 2020년 11월 12일 개봉을 하였고, 개봉과 동시에 아동 최준원 실종 사건과 더불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장기실종아동 사건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준원이를 찾는 데 도움이 될까하는 마음에 영화출연을 결심했습니다.” 최준원 양의 아버지는 지금도 변함없이 준원이를 찾고 있습니다.

 마치 증발된 것과 같이 사라져 버린 아이, 몇 년간 이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가족들의 마음도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증발’을 통해 살펴본 그들의 삶의 증발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장기실종아동의 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오는 고통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 장난신고전화

 

다큐 영화 증발 메인예고편 캡쳐

 “딸 줄 테니 거래 한번 하자.”, “준원이 우리가 데리고 있다.”, “(돈을 요구했으나 주지 않자) 우리가 성추행해서 바닷물에 빠뜨려 버렸다.” 준원이를 목격한 것 같다는 신고 전화가 많아짐과 동시에 늘어난 몇 년 간 준원이에 대한 장난 신고 전화입니다. 돈을 요구하거나 험한 말을 내뱉기도 하며 가족들의 상처를 또 한번 할퀴지만 가족들은 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발신자가 한 말의 진실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라도 가족들은 전화 제보 기록장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상처가 된 수많은 말들은 가족들의 손에 또 한번 써내려져 갔습니다.

 

 “제보가 온 거는 주로 하늘이에 대한 장난 전화, 허위제보 였어요. 어떤 날은 한 술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이를 봤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동두천까지 가서 술집을 찾아갔는데 여자분께서 하는 말씀이 자기 친구가 어제 장난 전화를 한 것 같다고...” 장기실종아동 김하늘의 어머님 또한 위와 같은 고통을 호소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겐 실종아동의 문제가 가십거리일지 몰라도 가족들에게 아이의 실종은 1분조차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큰 고통입니다.

 

 

 

2. 가족의 해체

 준원이가 실종되고 난 후, 준원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를 향한 의심과 더불어 마음에 상처가 될 말들을 내뱉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고 아이는 돌아오지 않자 ‘배우자가 아이를 일부러 숨겼을 가능성’을 의심하며 서로에게 화살촉을 돌렸습니다. 그 이후, 준원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하셨고 지금도 별거 중이십니다. 소중한 가족의 실종으로 결국 다른 구성원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상황, 그들의 마음은 서서히 메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가족 간 불화가 아님에도 가족의 해체로 이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온 우울증, 그리고 그로 인한 부모의 극단적 선택, 아이를 찾기 위해 쓰인 돈과 실업으로 찾아온 경제적 부담, 남겨진 가족들의 삶은 금이 가고 있었습니다.

 

 

 

3. 등한시되는 남은 자녀들

 “그냥 준원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최준원 양 언니 최준선)”, “준선이가 (그 당시 시기에) 뭐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나요. (최준원 양 엄마)” 2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준원이, 아이의 어머니와 언니는 인터뷰 도중 위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동생이 실종된 후, 준원이의 언니인 최준선 씨는 웃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동생을 찾는 데 정신이 없었던 엄마, 아빠,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찬 가족의 분위기 그리고 찾아온 이혼, 준선씨는 지금도 동생을 찾기 위해 바쁜 아빠를 보며 지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동생의 생사를 알 수 없기에 더욱 포기할 수 없는 아빠의 매일의 노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집에 돌아온 아빠의 눈치를 보는 것이 모두 힘들게 다가왔습니다. 

 

 인터뷰 과정에서 말을 잘 잇지 못했던 최준선 씨가 머뭇거리며 내뱉은 말은 “이러면 좀 너무하지만....그냥 준원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게 나을 것 같아요.” 이었습니다. 아이의 실종 사건이 발생한 후 많은 실종아동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 정서적 지원의 부족 등은 고스란히 남은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4. 수사의 불연속성과 인력 부족

 

기사 사진

 “수사 담당자가 바뀌면 또 다시 이 모든 과정들을 설명해야 해요.”, “결국 아이를 찾는 건 가족들이 전부 알아서 해야 하는 거에요.” 장기실종아동 사건은 수사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수사기관의 담당자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뀝니다. 그러나 실종아동 가족은 여전히 그 당시, 그 곳에 멈추어 변함없이 아이를 찾습니다. 바뀐 담당자에게 지금까지의 수사과정,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활용된 정보들 등에 관하여 일부를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연속성이 끊기는 수사에 장기실종아동 가족은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더불어 수사 인력 부족의 문제도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수사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해당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수사기관의 인력과 시간투자에 한계가 발생하기에 결국 아이를 찾는 오랜 과정은 모두 가족의 몫으로만 남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사관 한 사람이 수십 년 실종된 아이들 여러 명을 담당하고 있으며 경찰 조직 내에 실종수사팀을 만들어도 담당 경찰은 지방청에 한 두명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들의 한숨이 더욱 짙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5. 목격자 혹은 실종아동 의심 대상자 수색 과정에서의 어려움

 

다큐 영화 증발 메인예고편 캡쳐

 “죄송합니다.”, “기억이 안나요.”, “제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퉁명스럽게) 그래서요?” 과거의 일을 묻는 가족들에게 돌아온 수많은 답변들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과거 아이가 실종된 당시 남겨진 실마리로 지금의 노력을 이어가야 하는 가족들은 사건 당시 목격자, 의심 대상자, 가까운 지인 등의 진술이 모두 소중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들은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도와드릴 것이 없으니 연락을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는 것 등이 빈번했습니다.

 

 도움을 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며 미안함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쾌감부터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겐 과거의 일이라는 것과 동시에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실종 사건이라는 점이 그다지 달갑지 않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사건에 휘말리는 것일까봐 우선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마주할 때면 가족들은 더욱 답답해지기만 합니다.

 

 

 

 

 <증발>의 두글자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이나 물건이 갑자기 사라져 행방을 알지 못하게 됨을 속되게 이르는 말.’ 아동의 실종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임과 동시에 또 다른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들에게 증발된 것은 소중한 아이뿐일까’ 아이의 실종은 곧 가족의 행복이 영원히 무너짐을 의미했고, 남아있던 모든 온기, 감정마저 증발되어 메말라가는 과정임을 의미했습니다. 결국 모든 삶이 증발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를 찾기 위한 애타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을 뿐입니다.